“#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고려와 조선의 가교역을 한 시대의 지성으로 조선 불교의 초석을 세운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쓴 시다. 이 불후의 시는 #김용임의 ‘훨훨훨’의 노래를 통해 7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국민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나옹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이었다. 나옹은 경북 영덕에서 #아서구(牙瑞具)와 정(鄭)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혜근(慧勤), 호는 #나옹, #당호는 #강월헌(江月軒)이다.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마치 #석가모니처럼 ‘생사(生死)’에 대한 근본 물음표를 풀기 위해 문경 #묘적암(妙寂庵)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했다. 이후 양주 #회암사로 가서 4년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28세에 원나라로 건너가 법원사(法源寺, 북경 근처)에서 인도 마가다국 왕자 출신인 지공(指空)의 수제자가 되었고, 임제종을 대표하는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이었다. 그리하여 나옹은 재원(在元) 고려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나옹이 #원나라를 유력(遊歷)하던 중에 #절강성 남병산에 있는 절을 찾았을 때, #고승(高僧)이 물었다. “스님 나라에도 #참선법이 있는가?” #중화사상이 깔린 고려인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이에 나옹은 게송(偈頌)으로 답을 했다. “해 뜨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떠야 강남땅 산과 바다는 함께 붉어집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우리는 우리, 너는 너라고. 신령한 빛이야 언제나 그 빛이지요.”
나옹의 일갈(一喝)은 통쾌했다. 고려에서 해가 떠야 비로소 중국에도 빛이 들어오는 법이고, 그래서 함께 붉어지는 거라고. 고려와 중국을 분별하는 그 마음을 돌리라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신령한 빛은 동과 서를 나누지 않는 법이라고.
#나옹은 39세 때(공민왕 7, 1358) 귀국했다. 나옹이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간곡한 청으로 황해도 #신광사(神光寺) 주지로 있을 때 홍건적이 고려를 침범했지만, 생사에 초연한 나옹은 피난을 가지 않고 절을 지켰다. #홍건적의 우두머리는 깊은 감화를 받아 나옹에게 #침향(沈香)을 올렸을 정도였다.
공민왕은 불교 교단의 통합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양종오교(兩宗五敎) 승려들을 한자리에 모아 처음으로 #공부선(功夫選, 승려 대상의 과거)을 시행하였는데, 이것을 나옹이 주관하도록 하였다.
나옹은 회암사의 중수 #낙성회(落成會)에 전국의 신도들이 운집하자 대간(臺諫)들의 배척을 받게 되었다. 1376년 5월 15일. 나옹은 밀양의 #영원사(瑩原寺)로 추방되는 과정에 여주 #신륵사에서 57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그때 #봉미산 봉우리에 오색구름이 덮였고, 나옹을 태우고 가던 백마는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고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시호는 #선각(禪閣)이며, 공민왕으로부터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다비식이 끝나고 헤아릴 수 없는 사리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집으로 가져가 모셨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은 보물 228호이다.
고려 말 대문호인 목은 이색은 나옹의 비문을 이렇게 지었다. “기린의 뿔처럼 드문 존귀한 인물이며, 사리로서 영이함을 드러내었기에 마지막이 진실로 아름다웠네...”
#지공, #무학과 함께 ‘#삼대화상’이라 불린 나옹이 있어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불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실천하는 선(禪)으로 대중교화에 힘써 여말선초에 ‘#생불(生佛)’로 존숭 받은 #나옹왕사를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麗末佳山大聖生(여말가산대성생) 고려말에 영덕 가산에서 석가처럼 큰 성인이 태어나
死歸何處出家行(사귀하처출가행) 죽음 후 돌아가는 곳에 대한 의문으로 승려 되었네
十年得道中原主(십년득도중원주) 10년 정진에 득도해 원나라에서 최고 선사 되었고
卄載王師海內盟(입재왕사해내맹) 20년 동안 임금의 스승 되어 고려의 종장이 되었네
如水如風見性盡(여수여풍견성진)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 망혹 버리고 천성을 깨달았고
無憎無愛卽心成(무증무애즉심성) 사랑도 증오도 내려놓아 부처의 마음을 이루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