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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停戰)협정 70주년’과 조선을 세운 이성계 - 우종철의 일요논단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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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군엔 ‘적진에 단 한 명도 남기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신조가 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진에 억류된 포로를 구한다는 전통이 미군을 ‘세계 최강군’으로 만들었다.

2023년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停戰)협정 70주년’이다. 전쟁 중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은 

미동맹의 기틀을 닦았고, 정전 직후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 중흥의 주춧돌이 됐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서 열린 두 사람의 동상 제막식은 6·25의 참화를 이겨내고 대한민국 번영을 

이룬 ‘신뢰와 기적의 상징’이 될 것이다.


6·25전쟁 때 남북한 민간인만 53만여 명이 사망했고, 국군 실종자는 8만 명, 전시 납북자도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7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전사자로 추정돼 하와이에 임시 안치됐던 최임락 일병 등 호국영웅 유해 7위(位)

가 고국으로 귀환할 때 서울공항에서 거수경례하며 맞았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야 한다. 자유를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을 끝까지 예우하고 존중해야 자유 대한을 지킬 수 있다.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은 고조선을 세운 한민족의 시조이고, 그 계보를 이은 

조선왕조의 건국자가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1392~1398)이다.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이다. 

화령부(和寧府, 영흥)에서 이자춘(李子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고, 활 솜씨가 뛰어났다.

이성계는 홍건적과 왜구, 그리고 몽골족·여진족 등과 1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불패(不敗)의 명장’ ‘난세를 

구원할 영웅’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즈음 국제정세는 명나라가 중국 본토를 차지하면서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다시 반납하라.”는 억지를 부리고 나섰다. 최영과 우왕은 명의 요구에 반발했고, 원·명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요동까지 정벌하자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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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성계는 요동정벌 ‘4불가론(四不可論)’을 제기했다. 

그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 

△여름에 출병하는 것, 

△원정군이 나가면 왜구가 그 빈틈을 노릴 수 있는 것, 

△장마철에는 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염병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것이었다.

우군도통사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 태산 같은 최영을 제거한 후 조준의 건의에 따라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신 왕조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1392년 7월 16일. 이성계는 새 왕조를 열었고, 이듬해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다.

태조의 성공 요인은 조직화 된 ‘네트워킹(정도전과 정몽주)’, 연합과 제휴(위화도회군), 창조적 변화 선도(전제 개혁) 

등을 들 수 있다. 동지 규합→군사혁명→개국이라는 고려 왕건 방식의 혁명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태조는 6년의 재위 동안 ‘숭유억불·농본주의·사대교린’을 치국의 방략으로 세우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으며, 

<경제육전>을 편찬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왕자의 난’이라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을 초래, 태상왕의 자리에서 쓸쓸한 노년을 맞았고, 74세에 타계하였다.

태조는 창업에는 성공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후계 구도를 그리지 못해 수성에는 실패했다. 출신 성분을 극복하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해 ‘500년 장수기업’을 일궈낸 혁명가였던 태조를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海東天福六龍珍(해동천복육용진) 우리나라에 천복이 내려 귀한 여섯 용이 태어났고

北虜南倭伏屈身(북로남왜복굴신) 북의 오랑캐와 남의 왜가 몸을 엎드려 굴복했네

豪宕集雲開盛夏(호탕집운개성하) 호기로운 기세에 사람이 모여 큰 세를 형성했고

凄涼滿月促過春(처량만월촉과춘) 외롭고 쓸쓸한 고려 조정은 봄이 지나길 재촉했네

善隣如舊干戈止(선린여구간과지) 옛날처럼 선린외교로 요동전쟁은 그치게 되었고

其命維新上下遵(기명유신상하준) 역성혁명으로 새 나라를 세우자 상하 백성이 따랐네

創業守成皆不易(창업수성개불이) 창업과 수성은 모두 쉽지 않았지만

戰兢五百列朝伸(전긍오백열조신) 조심한 조선 500년의 역사는 27대를 펴게 됐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종철

출처 : 일요서울i(http://www.ilyoseoul.co.kr)